1 00:00:24,709 --> 00:00:30,959 "쥐잡이 사내" 2 00:00:31,043 --> 00:00:38,001 "오늘의 뉴스" 3 00:00:39,293 --> 00:00:42,501 쥐잡이 사내가 주유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4 00:00:42,584 --> 00:00:45,501 조용조용 발소리 하나 없이 진입로로 들어섰다 5 00:00:45,584 --> 00:00:47,918 자갈을 밟는데도 소리가 전혀 안 났다 6 00:00:48,001 --> 00:00:50,584 한쪽 어깨엔 군용 가방을 멨고 7 00:00:50,668 --> 00:00:53,334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구식 코듀로이 재킷에 8 00:00:53,418 --> 00:00:57,084 코듀로이 바지는 무릎 부분이 흰색 끈으로 동여매져 있었다 9 00:00:57,168 --> 00:00:58,251 - 계십니까? - 네 10 00:00:58,334 --> 00:00:59,209 설치류 처리반입니다 11 00:00:59,293 --> 00:01:02,043 작고 까만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12 00:01:02,126 --> 00:01:03,334 - 쥐 잡으러 오셨군요 - 맞습니다 13 00:01:03,418 --> 00:01:05,584 탄탄한 몸, 거친 피부, 긴 얼굴 14 00:01:05,668 --> 00:01:09,418 누런 앞니 두 개가 길게 뻗어 아랫입술을 덮었다 15 00:01:09,501 --> 00:01:12,459 얇고 둥근 귀는 거의 뒤통수까지 뻗어 있었다 16 00:01:12,543 --> 00:01:14,126 눈동자는 검은색에 가까웠지만 17 00:01:14,209 --> 00:01:17,209 사람을 볼 때면 안쪽엔 노란 기가 돌았다 18 00:01:17,293 --> 00:01:19,793 - 빨리 오셨네요 - 보건국 특별 지시가 있어서요 19 00:01:19,876 --> 00:01:22,084 보건국이요? 쥐를 다 잡을 겁니까? 20 00:01:22,168 --> 00:01:23,084 - 그렇죠 - 어떻게요? 21 00:01:23,168 --> 00:01:24,001 궁금하네요 22 00:01:24,084 --> 00:01:27,293 쥐의 종류와 위치에 따라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23 00:01:27,376 --> 00:01:28,668 - 덫을 놓겠죠? - 네? 24 00:01:28,751 --> 00:01:29,668 - 덫이요 - 덫이요? 25 00:01:29,751 --> 00:01:30,668 쥐잡이가 코웃음을 쳤다 26 00:01:30,751 --> 00:01:32,793 그렇겐 못 잡아요 쥐가 토끼도 아니고 27 00:01:32,876 --> 00:01:34,126 쥐잡이는 고개를 쳐들더니 28 00:01:34,209 --> 00:01:37,834 코를 좌우로 실룩대며 냄새를 맡았다 29 00:01:37,918 --> 00:01:40,793 쥐는 영리합니다 잡으려면 파악부터 해야죠 30 00:01:41,376 --> 00:01:43,043 이 일을 하려면 쥐를 잘 알아야 해요 31 00:01:47,334 --> 00:01:49,668 쥐들은 사람을 지켜봅니다 32 00:01:49,751 --> 00:01:53,459 쥐를 박멸하려고 준비하는 내내 사람을 지켜보죠 33 00:01:53,543 --> 00:01:55,334 하수관 작업은 아니겠죠? 34 00:01:55,418 --> 00:01:57,001 하수관은 아닙니다 35 00:01:57,084 --> 00:01:59,543 - 하수관 작업은 까다롭죠 - 안 그럴 것 같은데요 36 00:01:59,626 --> 00:02:02,709 그렇게 생각하신다? 직접 해보시면 알겠죠 37 00:02:02,793 --> 00:02:05,459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실지 궁금해지네요 38 00:02:05,543 --> 00:02:06,709 약을 쓰겠죠 39 00:02:06,793 --> 00:02:08,959 약을 어디에 놓을 겁니까? 40 00:02:09,043 --> 00:02:09,876 하수관에 풀겠죠 41 00:02:09,959 --> 00:02:11,459 사내의 얼굴이 승리감으로 빛났다 42 00:02:11,543 --> 00:02:13,251 역시 하수관에 풀겠다? 43 00:02:13,334 --> 00:02:15,668 그럼 어떻게 될까요? 싹 쓸려 내려갑니다 44 00:02:15,751 --> 00:02:17,668 약이 싹 사라져요 하수관은 강 같거든요 45 00:02:17,751 --> 00:02:20,918 그럼 박멸 전문가께서는 어떻게 하실까요? 46 00:02:21,001 --> 00:02:22,793 사내는 한 걸음 다가서서는 47 00:02:22,876 --> 00:02:25,043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48 00:02:25,126 --> 00:02:27,751 대단한 영업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 말했다 49 00:02:27,834 --> 00:02:30,959 쥐가 뭐든 갉아댄다는 건 아시죠? 50 00:02:31,043 --> 00:02:33,501 뭐든 일단 갉아대고 보죠 51 00:02:33,584 --> 00:02:36,626 하수구의 쥐를 잡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? 52 00:02:36,709 --> 00:02:39,543 그의 목소리는 꾸룩대는 개구리 소리 같았고 53 00:02:39,626 --> 00:02:42,709 입에 침이 고이기라도 한 듯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는 모습이 54 00:02:42,793 --> 00:02:44,751 마치 음미하는 듯했다 55 00:02:44,834 --> 00:02:48,459 평범한 종이봉투를 들고 하수구로 들어갑니다 56 00:02:48,543 --> 00:02:51,209 봉투에는 오로지 석고 가루만 들어 있죠 57 00:02:51,293 --> 00:02:53,626 하수구 천장에 봉투를 매달아 58 00:02:53,709 --> 00:02:56,418 물에 닿지 않을 정도로 드리워야 해요 59 00:02:56,501 --> 00:02:58,168 쥐의 앞발이 닿을 정도로만요 60 00:02:58,251 --> 00:02:59,668 클로드는 넋 나간 듯 들었다 61 00:02:59,751 --> 00:03:04,418 헤엄쳐 오던 늙은 쥐 한 마리가 봉투를 보고 멈춥니다 62 00:03:04,501 --> 00:03:06,626 킁킁대 보니 냄새가 나쁘지 않자 63 00:03:06,709 --> 00:03:08,209 - 어떻게 할까요? - 갉아대겠죠 64 00:03:08,293 --> 00:03:11,251 맞아요, 쥐가 갉아대면 봉투가 찢어지고 65 00:03:11,334 --> 00:03:14,751 쥐는 노력의 대가로 입안 가득 석고 가루를 얻겠죠 66 00:03:14,834 --> 00:03:15,668 그다음엔요? 67 00:03:15,751 --> 00:03:17,043 끝나는 거죠 68 00:03:17,751 --> 00:03:19,168 - 죽는다고요? - 꼴까닥합니다 69 00:03:19,251 --> 00:03:21,501 - 석고 가루에? - 젖으면 부풀잖아요 70 00:03:21,584 --> 00:03:23,793 목구멍에 들어가자마자 부풀어 오르고 71 00:03:23,876 --> 00:03:26,418 무엇보다 빠르게 쥐를 죽입니다 72 00:03:26,501 --> 00:03:28,209 이래서 쥐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니까요 73 00:03:28,293 --> 00:03:30,334 남자는 우쭐함에 얼굴을 빛내며 74 00:03:30,418 --> 00:03:34,334 지저분한 두 손을 모으더니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75 00:03:35,918 --> 00:03:38,293 자, 쥐들은 어디 있나요? 76 00:03:38,376 --> 00:03:41,168 '쥐'라는 단어가 얼마나 기름지고 질척한지 77 00:03:41,251 --> 00:03:43,043 녹인 버터로 가글하는 듯했다 78 00:03:43,126 --> 00:03:44,709 저 길 건너편 건초더미에요 79 00:03:44,793 --> 00:03:47,168 - 실내엔 없고요? - 건초더미에만 있어요 80 00:03:47,251 --> 00:03:51,668 실내에도 있을 겁니다 음식을 깔짝대며 병을 퍼뜨리겠죠 81 00:03:51,751 --> 00:03:55,001 - 병이 돌진 않습니까? - 나와 클로드를 차례로 쳐다봤다 82 00:03:55,084 --> 00:03:56,584 - 아픈 사람은 없어요 - 확실한가요? 83 00:03:56,668 --> 00:03:58,293 - 확실합니다 - 모르는 일이죠 84 00:03:58,376 --> 00:04:01,126 보건국 직원의 탈을 쓰고선 85 00:04:01,209 --> 00:04:03,959 림프절 페스트가 돌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했다 86 00:04:04,043 --> 00:04:07,543 어쨌든 건초더미에 쥐들이 있는데 어떻게 없앨 겁니까? 87 00:04:07,626 --> 00:04:09,876 사내는 이를 드러내며 교활한 웃음을 짓더니 88 00:04:09,959 --> 00:04:12,376 가방에서 커다란 양철통을 꺼내 들고는 89 00:04:12,459 --> 00:04:14,876 무게를 재듯 위아래로 움직이며 말했다 90 00:04:14,959 --> 00:04:17,334 특별하고 치명적인 약입니다 91 00:04:17,418 --> 00:04:21,084 아주 조금만 갖고 있다가 걸려도 6개월은 감옥에서 썩을 겁니다 92 00:04:21,168 --> 00:04:23,376 이 정도 양이면 백만 명을 죽일 수 있어요 93 00:04:23,459 --> 00:04:24,793 - 보실래요? - 보여주세요 94 00:04:24,876 --> 00:04:27,043 사내는 동전을 꺼내 지렛대 삼아 뚜껑을 열었다 95 00:04:27,126 --> 00:04:27,959 이것 좀 보세요 96 00:04:28,043 --> 00:04:31,626 사랑스럽다는 듯 깡통을 들어 클로드에게 보여줬다 97 00:04:31,709 --> 00:04:33,251 옥수수인가요, 보리인가요? 98 00:04:33,334 --> 00:04:35,709 치명적인 약을 잔뜩 머금은 귀리입니다 99 00:04:35,793 --> 00:04:39,459 한 알만 입에 넣어도 3분 안에 저세상행이죠 100 00:04:39,543 --> 00:04:41,584 이 통은 각별히 보관합니다 101 00:04:41,668 --> 00:04:44,001 그가 통을 소중히 감싸 쥐고 살짝 흔들자 102 00:04:44,918 --> 00:04:47,126 귀리 알갱이들이 바스락거렸다 103 00:04:47,209 --> 00:04:50,501 하지만 오늘은 안 줄 겁니다 줘 봤자 안 먹을 거거든요 104 00:04:50,584 --> 00:04:54,876 그게 쥐의 습성이죠 극도로 의심이 많아요 105 00:04:54,959 --> 00:04:57,501 오늘은 깨끗하고 맛있는 귀리를 줄 겁니다 106 00:04:57,584 --> 00:05:00,876 어떤 해도 끼치지 않겠죠 기껏해야 살찌는 정도려나 107 00:05:00,959 --> 00:05:04,668 내일도 똑같이 할 겁니다 그다음 날도, 또 다음 날도 108 00:05:04,751 --> 00:05:09,209 귀리 맛이 좋다고 소문나서 곧 온 동네 쥐들이 모여들겠죠 109 00:05:09,293 --> 00:05:10,126 영리하네요 110 00:05:10,209 --> 00:05:13,084 이 일을 하려면 쥐보다 영리해야 합니다 111 00:05:13,168 --> 00:05:14,626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죠 112 00:05:14,709 --> 00:05:16,126 '아예 쥐가 돼야겠네요' 113 00:05:16,209 --> 00:05:18,751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튀어나와 버렸다 114 00:05:18,834 --> 00:05:21,459 사내를 보고 있자니 그 말을 참을 수가 없었다 115 00:05:21,543 --> 00:05:23,293 그런데 반응이 놀라웠다 116 00:05:23,376 --> 00:05:24,334 - 맞아요! - 그가 외쳤다 117 00:05:24,418 --> 00:05:26,209 진짜 제대로 이해하셨군요 118 00:05:26,293 --> 00:05:29,584 훌륭한 쥐 박멸 전문가라면 누구보다 쥐와 닮아야 하고 119 00:05:29,668 --> 00:05:33,709 쥐보다 영리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120 00:05:34,876 --> 00:05:36,334 바쁘니까 시작해야겠네요 121 00:05:36,418 --> 00:05:39,626 레이디 리어노라 벤슨이 저택에 빨리 와달라고 해서요 122 00:05:39,709 --> 00:05:40,793 거기도 쥐가 있답니까? 123 00:05:40,876 --> 00:05:42,709 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124 00:05:42,793 --> 00:05:45,084 쥐잡이 사내는 진입로를 천천히 걸어갔다 125 00:05:45,168 --> 00:05:48,001 걸음걸이가 놀라울 만큼 쥐랑 똑같았다 126 00:05:48,084 --> 00:05:51,668 무릎의 탄성을 이용한 느긋하면서 섬세한 걸음 127 00:05:51,751 --> 00:05:54,084 자갈을 밟는데 소리 한번 나지 않았다 128 00:05:54,751 --> 00:05:56,668 그는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더니 129 00:05:56,751 --> 00:06:00,459 건초더미 주위를 빠르게 돌며 귀리 몇 줌을 땅에 뿌렸다 130 00:06:00,543 --> 00:06:03,126 다음 날 다시 와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131 00:06:03,209 --> 00:06:06,126 그다음 날에도 왔고 또 그다음 날에도 왔다 132 00:06:06,209 --> 00:06:09,543 그리고 드디어 나흘째에 약에 적신 귀리가 등장했다 133 00:06:09,626 --> 00:06:11,209 그런데 이번엔 뿌리지 않고 134 00:06:11,293 --> 00:06:14,501 건초더미 주위 몇 군데에 한 무더기씩 두었다 135 00:06:17,418 --> 00:06:19,084 - 개가 있습니까? - 네 136 00:06:19,168 --> 00:06:23,043 개가 끔찍하게 죽길 바라지 않으면 울타리 못 넘어오게 하세요 137 00:06:23,126 --> 00:06:25,209 다음 날 사체를 수거하러 왔다 138 00:06:25,293 --> 00:06:28,001 죽은 쥐 좀 넣게 낡은 자루 하나 주십쇼 139 00:06:28,084 --> 00:06:31,584 득의양양한 태도로 검은 눈동자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140 00:06:31,668 --> 00:06:34,918 이제 곧 대단한 성과를 선보일 참인 것이다 141 00:06:35,001 --> 00:06:37,876 클로드가 자루를 가져왔고 다 같이 길 건너편으로 갔다 142 00:06:37,959 --> 00:06:39,668 사내는 건초더미 주변을 돌며 143 00:06:39,751 --> 00:06:42,543 몸을 숙여 독약 귀리 무더기를 들여다보았다 144 00:06:42,626 --> 00:06:44,501 - 뭔가 이상하네 - 그가 중얼거렸다 145 00:06:44,584 --> 00:06:46,043 낮은 목소리에 화가 가득했다 146 00:06:46,126 --> 00:06:49,584 다른 귀리 무더기 쪽으로 가더니 엎드려서 자세히 들여다봤다 147 00:06:49,668 --> 00:06:52,084 - 뭔가 단단히 잘못됐어 - 왜 그래요? 148 00:06:52,168 --> 00:06:55,251 대답은 없었지만 쥐들이 미끼를 건드리지 않은 건 분명해 보였다 149 00:06:55,334 --> 00:06:57,459 '쥐들이 엄청 영리한가 봅니다' 내가 말했다 150 00:06:57,543 --> 00:07:00,793 그는 내 말에 짜증이 났고 얼굴과 코에 감정이 드러났으며 151 00:07:00,876 --> 00:07:04,251 누런 앞니 두 개는 아랫입술을 파고들 듯했다 152 00:07:04,334 --> 00:07:06,834 - 헛소리하지 마쇼 - 그가 날 보며 말했다 153 00:07:06,918 --> 00:07:09,751 쥐가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 뭘 먹고 온 겁니다 154 00:07:09,834 --> 00:07:12,584 맛난 먹이를 배부르게 먹은 거예요 155 00:07:12,668 --> 00:07:16,751 배가 터질 듯 부르지 않고서야 귀리를 마다할 쥐는 없어요 156 00:07:16,834 --> 00:07:18,459 쥐잡이 사내는 시무룩하게 돌아섰다 157 00:07:18,543 --> 00:07:22,043 무릎을 꿇고 앉아 모종삽으로 독약 귀리를 푸더니 158 00:07:22,126 --> 00:07:24,293 조심스럽게 깡통에 담았다 159 00:07:24,376 --> 00:07:27,959 작업이 끝난 후, 우리 셋은 다시 길을 건너 돌아왔다 160 00:07:29,043 --> 00:07:30,918 주유기 옆에 선 쥐잡이 사내는 161 00:07:31,001 --> 00:07:32,918 침울하고 초라해 보였고 162 00:07:33,001 --> 00:07:35,668 얼굴에 음울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163 00:07:35,751 --> 00:07:39,543 실패감에 위축된 듯했고 속 모를 눈동자는 음산했다 164 00:07:39,626 --> 00:07:42,876 누런 앞니 한쪽 옆으로 혀를 살짝 내밀었다 165 00:07:42,959 --> 00:07:46,126 음침한 눈길로 나를 한 번 보고 클로드를 돌아보았다 166 00:07:46,209 --> 00:07:48,209 코끝을 씰룩이며 냄새를 맡고 167 00:07:48,293 --> 00:07:51,334 발뒤꿈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천천히 몸을 흔들더니 168 00:07:51,418 --> 00:07:53,959 조용하고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169 00:07:54,043 --> 00:07:55,376 뭐 하나 보여드릴까? 170 00:07:55,459 --> 00:07:57,751 실추된 명예를 되찾으려는 게 분명했다 171 00:07:57,834 --> 00:07:59,918 - 뭔데요? - 굉장한 거 보여드려요? 172 00:08:00,001 --> 00:08:03,043 오른손을 재킷의 건빵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더니 173 00:08:03,126 --> 00:08:06,668 살아 있는 커다란 쥐를 꺼냈는데 두 손가락으로 꽉 움켜쥔 채였다 174 00:08:06,751 --> 00:08:07,668 맙소사! 175 00:08:08,334 --> 00:08:09,293 굉장하지요? 176 00:08:09,376 --> 00:08:12,751 몸을 움츠리고 목을 길게 뺀 채 능글맞은 얼굴로 우릴 보며 177 00:08:12,834 --> 00:08:15,043 커다란 갈색 쥐를 들고 있는데 178 00:08:15,126 --> 00:08:18,126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듯 쥐의 목을 잡고 179 00:08:18,209 --> 00:08:20,543 고개 돌려 물지 못하게 단단히 틀어쥐었다 180 00:08:20,626 --> 00:08:22,459 주머니에 쥐를 넣고 다닙니까? 181 00:08:22,543 --> 00:08:24,501 쥐 한두 마리쯤은 늘 지니고 다니지요 182 00:08:24,584 --> 00:08:28,126 다른 손을 다른 주머니에 넣더니 꺼내 든 것은 작고 하얀… 183 00:08:28,209 --> 00:08:30,751 - 페럿입니까? - 사내는 쇳소리를 내며 킥킥댔다 184 00:08:30,834 --> 00:08:33,543 페럿은 주인을 알아보는 듯 손안에서 얌전히 있었다 185 00:08:33,626 --> 00:08:35,918 페럿은 누구보다 빠르게 쥐를 죽이지요 186 00:08:36,001 --> 00:08:38,251 그리고는 두 짐승 사이의 거리를 좁혔고 187 00:08:38,334 --> 00:08:41,584 이제 페럿의 코와 쥐의 얼굴은 15c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188 00:08:41,668 --> 00:08:44,251 페럿의 핑크빛 눈이 쥐를 노려보았다 189 00:08:44,334 --> 00:08:47,043 쥐는 천적에게서 멀어지려 발버둥을 쳤다 190 00:08:47,126 --> 00:08:48,251 - 자 - 사내가 말했다 191 00:08:48,334 --> 00:08:49,168 잘 봐요 192 00:08:51,168 --> 00:08:53,293 카키색 셔츠의 단추가 두어 개 풀려 있었는데 193 00:08:53,376 --> 00:08:56,751 맨살뿐인 셔츠 안으로 쥐를 집어넣었다 194 00:08:56,834 --> 00:08:59,751 벨트 때문에 쥐는 허리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195 00:08:59,834 --> 00:09:01,418 그다음엔 페럿을 집어넣었다 196 00:09:01,501 --> 00:09:04,376 셔츠 안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197 00:09:04,459 --> 00:09:08,043 쥐가 페럿을 피하려고 사내의 몸을 둘러 달리는 듯했다 198 00:09:08,126 --> 00:09:11,876 6, 7바퀴를 도는 동안 작은 덩어리와 큰 덩어리 사이가 199 00:09:11,959 --> 00:09:15,043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200 00:09:15,126 --> 00:09:17,751 결국 두 덩어리가 하나가 되는 듯 보였고 201 00:09:17,834 --> 00:09:20,543 실랑이가 벌어졌으며 날카로운 비명이 이어졌다 202 00:09:20,626 --> 00:09:23,793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사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203 00:09:23,876 --> 00:09:26,084 두 다리를 벌리고 두 팔은 살짝 늘어뜨린 채 204 00:09:26,168 --> 00:09:29,209 클로드의 얼어붙은 얼굴을 까만 눈동자로 주시했다 205 00:09:30,084 --> 00:09:33,793 마침내 셔츠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 206 00:09:33,876 --> 00:09:35,543 페럿을 꺼냈고 207 00:09:35,626 --> 00:09:38,001 다른 손으로는 죽은 쥐를 꺼냈다 208 00:09:38,084 --> 00:09:41,293 페럿의 하얀 주둥이엔 피가 묻어 있었다 209 00:09:42,543 --> 00:09:44,834 '유쾌한 광경은 아니네요' 내가 말했다 210 00:09:44,918 --> 00:09:47,834 이런 광경은 전에 본 적 없겠죠 211 00:09:47,918 --> 00:09:49,209 대체로 그렇죠 212 00:09:49,293 --> 00:09:51,959 계속 그러다가는 결국 배를 물릴 겁니다 213 00:09:52,043 --> 00:09:54,293 하지만 클로드는 분명 흥미로워했고 214 00:09:54,376 --> 00:09:55,876 사내는 다시 우쭐해졌다 215 00:09:55,959 --> 00:09:58,084 더 굉장한 걸 보여드릴까? 216 00:09:58,168 --> 00:10:01,251 직접 보지 않고는 절대 못 믿을 모습을요 217 00:10:01,334 --> 00:10:03,876 나는 꽤나 걱정이 돼서 클로드를 흘끗 봤다 218 00:10:05,918 --> 00:10:06,751 그럽시다 219 00:10:07,501 --> 00:10:10,959 {\an8}사내는 죽은 쥐를 한쪽 주머니에 페럿을 다른 주머니에 넣었다 220 00:10:11,043 --> 00:10:14,959 {\an8}그러더니 가방을 뒤져 두 번째 살아 있는 쥐를 꺼냈다 221 00:10:15,043 --> 00:10:15,876 {\an8}이런, 맙소사! 222 00:10:15,959 --> 00:10:18,334 늘 한두 마리쯤은 갖고 다닌다니까요 223 00:10:18,418 --> 00:10:20,251 이 일을 하려면 쥐를 잘 알아야 하고 224 00:10:20,334 --> 00:10:22,751 그러려면 늘 곁에 둬야 하니까요 225 00:10:22,834 --> 00:10:26,418 이놈은 늙은 시궁쥐인데 지독하게 영리한 놈입니다 226 00:10:26,501 --> 00:10:30,043 이번엔 뭘 하려나, 하며 날 바라보곤 하지요 227 00:10:30,126 --> 00:10:31,459 - 보이죠? - 매우 불쾌한 광경이다 228 00:10:31,543 --> 00:10:33,001 '어쩔 셈인가요?' 내가 물었다 229 00:10:33,084 --> 00:10:36,209 좀 전의 공연보다 더 별로일 듯한 느낌이 들었다 230 00:10:36,293 --> 00:10:39,376 - 끈 하나만 주시지요 - 클로드가 끈을 하나 줬고 231 00:10:39,459 --> 00:10:41,834 사내는 쥐의 한쪽 뒷다리를 묶었다 232 00:10:41,918 --> 00:10:44,709 쥐가 발버둥쳤지만 손아귀에서 꼼짝 못 했다 233 00:10:44,793 --> 00:10:46,334 안에 탁자가 있습니까? 234 00:10:46,418 --> 00:10:48,376 '실내엔 못 들입니다' 내가 말했다 235 00:10:48,459 --> 00:10:50,834 탁자든 뭐든 평평한 게 필요합니다 236 00:10:50,918 --> 00:10:54,168 우린 주유기 쪽으로 갔고 사내는 시궁쥐를 그 위에 올려놨다 237 00:10:54,251 --> 00:10:57,751 그리고 쥐가 도망 못 가도록 기둥에 줄을 묶었다 238 00:10:57,834 --> 00:11:00,293 쥐는 웅크린 채 미동도 않고 경계했다 239 00:11:00,376 --> 00:11:02,626 커다란 회색 쥐는 검은 눈동자를 빛냈고 240 00:11:02,709 --> 00:11:06,209 비늘로 덮인 긴 꼬리는 철제 주유기 위에 늘어져 있었다 241 00:11:06,293 --> 00:11:07,876 쥐는 사내에게서 눈을 거뒀지만 242 00:11:07,959 --> 00:11:10,459 어쩌려는지 살피듯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243 00:11:10,543 --> 00:11:14,209 사내가 몇 발짝 물러서자 쥐는 곧장 긴장을 풀었다 244 00:11:14,293 --> 00:11:18,001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더니 가슴의 회색 털을 핥기 시작했다 245 00:11:18,084 --> 00:11:20,626 그러고는 양쪽 앞발로 주둥이를 긁었다 246 00:11:20,709 --> 00:11:23,918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247 00:11:24,001 --> 00:11:26,376 - 내기 하나 할까요? - 사내가 말했다 248 00:11:26,459 --> 00:11:27,918 '됐습니다' 내가 말했다 249 00:11:28,001 --> 00:11:31,251 - 내기하면 더 재밌을 텐데요 - 무슨 내기를 하게요? 250 00:11:31,334 --> 00:11:34,293 손을 쓰지 않고 저 쥐를 죽여보겠습니다 251 00:11:34,376 --> 00:11:36,501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죠 252 00:11:36,584 --> 00:11:39,293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심산이 분명했다 253 00:11:39,376 --> 00:11:42,668 곧 죽을 쥐를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254 00:11:42,751 --> 00:11:44,668 쥐가 죽을 거라는 사실보다는 255 00:11:44,751 --> 00:11:47,209 특별한 방식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256 00:11:47,293 --> 00:11:49,418 그것도 아주 잔혹하게 257 00:11:49,501 --> 00:11:51,501 - 발로 차려고요? - 발도 안 씁니다 258 00:11:51,584 --> 00:11:54,043 - 팔은요 - 팔, 다리, 손, 다 안 써요 259 00:11:54,126 --> 00:11:55,626 - 깔고 앉으려나? - 안 뭉갭니다 260 00:11:55,709 --> 00:11:57,626 - 어디 봅시다 - 우선 1파운드 거시죠 261 00:11:57,709 --> 00:11:59,543 어림없는 소리, 내가 왜요? 262 00:11:59,626 --> 00:12:01,251 - 얼마나 걸 겁니까? - 안 걸어요 263 00:12:01,334 --> 00:12:03,209 그럼 관둡시다 264 00:12:03,293 --> 00:12:05,626 - 사내는 끈을 푸는 시늉을 했다 - 1실링 걸죠 265 00:12:05,709 --> 00:12:07,709 속이 아까보다 더 울렁거렸지만 266 00:12:07,793 --> 00:12:10,418 이 모든 상황엔 묘하게 자석 같은 힘이 있었고 267 00:12:10,501 --> 00:12:12,918 나는 그 자리를 뜨긴커녕 움직일 수도 없었다 268 00:12:13,001 --> 00:12:13,959 - 댁도 할 거요? - 아뇨 269 00:12:14,043 --> 00:12:15,751 1실링에 이걸 하라고요? 270 00:12:15,834 --> 00:12:17,793 - 하라곤 안 했는데요 - 돈은요? 271 00:12:17,876 --> 00:12:19,668 클로드가 주유기 위에 1실링을 올려놨고 272 00:12:19,751 --> 00:12:22,543 사내는 클로드의 돈 옆에 6펜스 동전 두 개를 놓았다 273 00:12:22,626 --> 00:12:23,459 내기하는 겁니다 274 00:12:23,543 --> 00:12:26,126 클로드와 나는 물러섰고 사내는 앞으로 다가섰다 275 00:12:26,209 --> 00:12:29,959 두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상체를 쥐 쪽으로 기울였다 276 00:12:30,043 --> 00:12:31,626 쥐가 경계하며 웅크렸다 277 00:12:31,709 --> 00:12:34,293 사내에게 달려들려는 듯하더니 278 00:12:34,376 --> 00:12:36,084 이내 물러나기 시작했다 279 00:12:36,168 --> 00:12:38,543 웅크린 채 천천히 뒤로 물러나다 보니 280 00:12:38,626 --> 00:12:40,751 뒷다리에 묶은 줄이 팽팽해졌다 281 00:12:40,834 --> 00:12:42,959 사내는 쥐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282 00:12:43,043 --> 00:12:45,626 까만 눈으로 쥐를 지켜보는데 갑자기… 283 00:12:45,709 --> 00:12:48,334 - 쥐가 발작했다 - 쥐가 발작하며 몸을 날렸다 284 00:12:51,209 --> 00:12:54,834 줄이 확 당겨지면서 다리가 탈골 직전까지 갔다 285 00:12:54,918 --> 00:12:58,293 쥐는 줄이 닿는 한 최대한 멀리 주유기 끝으로 기어갔다 286 00:12:58,376 --> 00:13:01,334 수염이 떨리고 긴 회색 몸뚱이는 두려움에 굳었다 287 00:13:01,418 --> 00:13:04,793 그러자 사내는 아주 천천히 상체를 움직여 288 00:13:04,876 --> 00:13:06,001 더 가까이 다가갔다 289 00:13:06,084 --> 00:13:09,209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290 00:13:09,293 --> 00:13:12,793 몹시 불쾌한 일이 벌어질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291 00:13:12,876 --> 00:13:16,334 악랄하고 잔인한 광경을 봐야만 하는 것이다 292 00:13:16,418 --> 00:13:19,709 두 얼굴 사이의 거리가 한 뼘 정도로 좁혀졌다 293 00:13:19,793 --> 00:13:22,501 잔뜩 겁먹고 긴장한 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294 00:13:22,584 --> 00:13:23,959 쥐잡이 사내 역시 긴장했지만 295 00:13:24,043 --> 00:13:27,543 잔뜩 당겨 놓은 용수철처럼 위험하고 적극적인 긴장감이었다 296 00:13:27,626 --> 00:13:30,168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297 00:13:30,251 --> 00:13:32,084 그러다 갑자기 달려들었다 298 00:13:32,168 --> 00:13:33,209 마치 뱀이 공격하듯 299 00:13:33,293 --> 00:13:36,043 칼을 날리듯 빠르게 머리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300 00:13:36,126 --> 00:13:38,168 하체 근육의 힘이었다 301 00:13:38,251 --> 00:13:40,793 언뜻 입을 크게 벌리는 게 보였고 302 00:13:40,876 --> 00:13:41,918 누런 앞니가 드러나며 303 00:13:42,001 --> 00:13:44,668 입을 벌리느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304 00:13:46,001 --> 00:13:47,918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305 00:13:48,001 --> 00:13:50,334 그래서 눈을 감았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땐 306 00:13:50,418 --> 00:13:51,459 쥐는 죽어 있었다 307 00:13:51,543 --> 00:13:54,084 쥐잡이 사내는 돈을 주머니에 넣더니 308 00:13:54,168 --> 00:13:55,793 입안의 불순물을 뱉었다 309 00:13:57,793 --> 00:13:59,918 달큰한 맛의 비결이 이겁니다 310 00:14:00,001 --> 00:14:03,918 큰 공장이나 초콜릿 회사에선 쥐 피로 달큰한 맛을 만들죠 311 00:14:04,001 --> 00:14:06,126 쥐 피 좀 먹는다고 안 죽어요 312 00:14:08,834 --> 00:14:10,584 정말 역겹군요 313 00:14:10,668 --> 00:14:13,126 사실입니다 두 분도 많이 먹었을 거예요 314 00:14:13,209 --> 00:14:16,293 막대 초콜릿, 신발 끈 모양 사탕 전부 쥐 피로 만들어요 315 00:14:16,376 --> 00:14:18,501 그런 얘긴 그만 듣고 싶군요 316 00:14:18,584 --> 00:14:21,334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부글부글 끓이면서 317 00:14:21,418 --> 00:14:23,459 기다란 막대로 저어대죠 318 00:14:23,543 --> 00:14:26,001 초콜릿 공장의 중대한 비밀이라 319 00:14:26,084 --> 00:14:29,918 피를 공급하는 쥐잡이 외엔 아는 사람이 없어요 320 00:14:30,001 --> 00:14:32,418 사내는 청중이 자기편이 아님을 깨달았다 321 00:14:32,501 --> 00:14:35,626 역겨움 가득한 우리의 얼굴은 분노로 시뻘게져 있었다 322 00:14:36,709 --> 00:14:39,501 사내는 말을 멈추고 돌아섰다 323 00:14:39,584 --> 00:14:44,168 우리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조용히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324 00:14:44,251 --> 00:14:47,126 자갈을 밟는데도 발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325 00:15:00,418 --> 00:15:01,251 이상하죠? 326 00:15:02,126 --> 00:15:04,084 쥐들이 약에 적신 귀리를 안 먹었다니 327 00:15:05,418 --> 00:15:09,334 건초더미 안에 뭔가 영양가 높은 게 있나 보네요 328 00:15:25,793 --> 00:15:28,876 "40대 후반, 로알드 달은 아머샴 위스테리아 코티지에서" 329 00:15:28,959 --> 00:15:31,459 "그 지역과 주민들을 보며 구상한 단막 소설" 330 00:15:31,543 --> 00:15:34,834 "'클로드의 개'를 집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" 331 00:15:34,918 --> 00:15:36,709 "'쥐잡이 사내'는 그중 한 편이다" 332 00:16:38,751 --> 00:16:43,751 자막: 여리나